폭력


폭력. 나는 자유한가?

요즈음 유명 배구선수 자매의 학폭 경력이 밝혀지면서 폭력행위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하긴 우리들의 학창시절, 군대시절에서는 늘 따라다녔던 ‘일상’이었다. 그것들이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폭력의 피해 당사자에게는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상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고통은 육체적인 아픔과 더불어, 정신적인 모멸감과 수치심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어쩌면 평생을 같이 갈수도 있는 중증인 것이다.

도지사, 대도시 시장, 군부대 지휘관 등 직권을 이용한 성추행, 성폭행 등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미국 뉴욕의 현직 주지사도 그 행위자 명단에 올려졌고, 전 미국 대통령의 추한 행위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민간인 폭행, 북한과 중국의 악질적인 인권탄압, 일제36년의 잊지못할 만행, 독재정권에서 벌어져 왔던 아니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적 정권적 폭력사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폭력은 생존과 필연적 관계일까? 인류의 문명은 아직도 미개하고 야만적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 했는가? ‘나와 우리’의 종족번식과 번영과 편리함을 위해서는 필요악인가? 꼭 있어야 하고, 없어서는 아니될 필수 불가결인가?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먹고 자라는 괴물인가?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자그마한 소원은 ‘더 나은 세상’ 이라는 탈을 쓴 폭력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만 하는가?

소시민들에게는 그럴 자격이나 권리는 없다는 것인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쟁취한 것처럼 보였던 ‘정의와 자유’는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는 역사의 유물인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르짖는 ‘평등과 복지’는 허공을 지나치는 메아리에 불과한 것인가? 인류의 문제, 나라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논 할 때 ‘평화’는 그냥 해보는 요식행위인가?

내가 소속된 직장이나 교회나 가정에서는 편안함과 부드러움과 용서와 배려와 존중은 안녕히 계시는가? 세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폭력과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꾸짖으면서, 나의 생각과 나의 언행에서 뿜어내는 미움과 시기와 정죄는 그 질타에서 제외되는가? 나의 몸에 배어 있는, 그래서 무의식 중에 내던지는 ‘갑질’은 면죄부를 받았는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폭력의 매연에서 나는 과연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대답은 확실하다. ‘아니다’이다. 남들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가족들이 잘 안다. 아니 내 자신이 더 잘 안다.

나의 생각이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고, 나의 말과 행동이 남을 판단하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폭력 가해자이다. 독일이나 일본의 전범들이 ‘나쁜 것들’이라면 나도 별반 차이가 없는 ‘나쁜 것들’에 포함되어야 한다. 폭력배들이 남에게 가해를 한 ‘나쁜 것들’이라면 나는 남이 아닌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자식들에게 가해를 한 ‘더 나쁜 것들’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 하늘의 법규인 성경말씀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주권자의 교훈이요 법도이다. 명령이다.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안 지킨다. 못 지킨다. 어디서 나오는 용기일까? 허세이다. 절대자의 법을 내 형편에 맞추어 조정한다. 내 마음에 들 때는 지킨다. 불편하면 안 지킨다. 무지인가? 교만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신31:20)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 내 삶의 목적이다. 왜 사는가? 사랑하기 위해 산다. 폭력은 창조주께 대한 배신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 폭력이다. 무관심도 폭력이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자주 벌어지는 말싸움. 언어폭력이다. 가난한 자를 무시하는 나. 폭력배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밉다. 인사도 안 한다? 여지없는 폭력행위이다. 인종차별, 위험한 운전,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몰상식한 태도,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악한 생각. 내 자신을 미워하는 패배주의, 열등의식, 좌절감. 모두가 폭력이다. 폭력은 아니라고 항변할지는 몰라도 아무튼 사랑은 아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가?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다.

나는 폭력에서 자유한가?

그렇다면 ‘사랑’ 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자. 나를 인정하자. 나의 무능함도 게으름도 허물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더 유능했고 더 부지런했고 더 똑똑했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아주 많이 재물을 쌓았다면 아마 더욱 죄를 많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잠30:9)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학대하고 교만을 떨었을까? 이런 모습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며 산다. 그렇게 살자. 가족에 대한 아쉬움도, 이웃에 대한 불쾌함도, 세상에 대한 섭섭함도 사랑하며 살자. 폭력은 분명 ‘죄’이다. 마땅히 미워하고 꾸짖고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죄인’은 미워하지 말자. 회개할 기회를 주자. 그’죄인’속에 나도 있었고 인류가 모두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를 기대하자. YOU MUST LOVE ONE ANOTHER.

2021.3.10

주 수학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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