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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에녹




(가인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 4:17)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한 후 죽음을 보지않고 들려 올라간 에녹 이외에 성경에는 또 한사람 에녹을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인의 아들 에녹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범죄한 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가 낳은 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한 구절의 말씀에서 가인의 아들 에녹의 삶이 어떠했을 지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가인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 당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여 범죄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보호의 표를 얻습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는 이사야 말씀처럼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난 삶을 두려워했습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 4:14)


그가 두려워 한 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보복과 위협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 것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악한 가인의 두려움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는 표를 주십니다. 그 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가인을 만나는 모든 사람은 그 표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보호의 표를 가졌음에도 가인은 여전히 그의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없었나봅니다. 그는 하나님 앞을 떠나서 가정을 이룬 후 아들을 낳고 성을 쌓습니다. 성을 쌓았다는 말은 자기가 다스리는 도시를 건설했다는 말이며 자신의 권위와 재산과 권속을 지킬수 있는 방어체제를 구축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쌓은 벽에 대해서 만족했는지 가인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성의 이름을 짓습니다.


이제 가인의 아들 에녹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표를 갖고 있어 사람들이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 가인의 장남인데다가 자기를 보호하는 성 안에 살고 있으며 그 도시의 이름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되었습니다. 그 에녹이 당대에 아주 유명한 유력자였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이름을 딴 성벽 안에서 매우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또 다른 에녹을 어땠을까요? 별로 특출 나지않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며 인류 중에서 제일 오래 살았다는 아들 므두셀라와 비교할 것도 없이 심지어 자기 아버지보다도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에녹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라는 인정을 받았으며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뛰어 넘었고 유다서에 의하면 이미 마지막 주님의 심판을 예언한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당대에 안전하고 유명하게 살았던 에녹과 영원토록 그 이름이 찬란한 별처럼 하나님과 우리 마음에 새겨진 또 다른 에녹. 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판이하게 다른 삶은 살은 이 두 사람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삶이었을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둘러쌓인 성벽 안에서 자기 이름을 드높이며 안전하고 유명하게 사는 것은 참 그럴듯해 보이는 삶이고 누구나 선망하는 인생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성벽 안으로부터 불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 13:12-14)

메시지 성경은 그 성문 안을 “insider world”라고 말하며 “안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벽이 주는 안전과 편안을 거절하고 성문 밖으로 나가신 완벽한 아웃사이더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편의와 혜택을 누리는 인사이더의 삶을 추구하는 우리 또한 성문 밖으로 불러내셔서 그 분과 함께 동행하자고 초대하십니다.

300년간 하나님과 함께 성벽 밖의 길을 동행했던 에녹처럼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그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안전한 요새요, 피난처가 되어주실줄 믿습니다. 그 길을 주님과 함께 달려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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